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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공지능과 인간의 비교우위 학습주제 교양·기타
등록일 2016-06-16 조회수 2038

“아빠, 바둑 한 판 뛰어요.” 불쑥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어디서 찾았는지 바둑판과 바둑알을 들고 도전해왔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끝난 후 호기심 많은 아들이 바둑에 관심이 많아진 모양이다. 그 동안 다른 게임에 밀려 퇴조를 우려해 온 바둑계에게 아들의 반응은 낭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바둑 활성화보다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인식의 눈을 뜨게 해 준 모멘텀적 측면이 강한 듯하다.

2001년 러시아의 수학교수 라자레프(Lazarev)가 바둑은 과학처럼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인류 사회의 진보에 공헌할 수 없다고 주장했을 때만 해도 바둑이 두뇌 스포츠라는 것 외에는 반박 논리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대결에서 인간 이세돌이 최소 한 판을 이김으로써 1,200대의 컴퓨터 능력을 고도화시킨 인공지능의 약점을 드러내 보인 데다, 인류가 맞이하게 될 미래의 모습을 충격적으로 각인시킨 점에서 바둑은 인류 사회의 진보에 엄청난 기여를 한 듯하다. 더구나 인공지능의 원조격인 앨런 튜링(Alan Turing)도 바둑 애호가였다니 바둑이 이래저래 인공지능과 관련이 많은가보다.

하지만 인간의 직관과 통찰력이 요구되는 바둑이라는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승리는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한 충격의 이면에는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갑자기 바둑에 관심을 가지며 도전해 왔을 때, “이 녀석이! 이미 기계에게 바둑은 졌어. 그런데 왜 바둑을 배우려고 하니? 차라리 그 시간에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을 배우는 것이 낫지.” 라는 말을 내뱉고 싶었다.

하여튼 이번 대결을 분기점으로 사람들은 지적 활동을 도와주는 도구로서의 인공지능이 아닌,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과 겨루게 될 지적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을 보게 된 것만은 틀림없다. 로봇에 밀려 해고통지서를 받고, 로봇에게 이력서를 제출하면서 줄어드는 일자리를 놓고 인간들끼리 벌일 싸움을 상상하면서, 그곳에 나 자신 또는 자신의 아이들이 포함되지는 않을까 염려하게 된 것이다. 이에 부합하듯 알파 의사, 알파 변호사, 알파 뱅커, 알파 기자, 알파 교사 등이 나타나 인간 대신 세상을 주름잡게 될 것이라는 보고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모두 인공지능이 ‘보완재’가 아닌 ‘대체재’라는 인식 때문이다. 어쩌면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보완재적 관점에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유토피아적 세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이 얘기하는 유토피아는 인공지능이 노예처럼 일을 하고 인간은 그 노예가 창출한 부를 누리는 세계이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1928년 경제학자 케인즈(Keynes)가 ‘우리 손자들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짧은 에세이에서 언급한 대로 2028년쯤 되면 아무도 돈 버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로봇(robot)이 노예(robota)라는 뜻의 체코어에서 유래되었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의 노예 역할만 할 것인가?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하는 능력을 박탈시켜 시장경제의 또 다른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로 작용하며 인간을 노예의 길(road to serfdom)로 인도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인공지능을 움직이는 일부 자본가들이 빅브라더(big brother)가 되어 자본과 정보를 독식한다면? 헤라클레스나 슈퍼맨의 가공할 힘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처럼 알파고의 가공할 묘수에 쩔쩔매는 이세돌의 표정에서 이러한 질문들이 스쳐 지나감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로섬(zero-sum) 게임의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가 아닌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인간의 미래가 반드시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헤라클레스가 30년간 청소하지 않았던 아우게아스(Augeas)왕의 외양간을 하루 만에 청소하는 절대우위의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괴물을 물리치는 영웅의 길을 선택한 것은 헤라클레스가 외양간 청소부보다는 영웅의 일에 보다 비교우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슈퍼맨 대(對) 배트맨’이라는 영화에서 인간인 배트맨이 크립토나이트 반지를 끼면서, “그(슈퍼맨)는 자기 분야에서만큼은 최고지만 내 분야에서는 아니지”라며 분야를 확실히 구분한 것도 배트맨만의 비교우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 비해 비교우위가 있는 인간의 분야는 무엇일까? 항상 최적화된 확률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찾는 인공지능에 비해 감성과 도덕을 지닌 인간은 올바른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수단 보다는 목적 자체를 설정하고 비판하기도 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으로서의 비교우위가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승리를 탐하면 이길 수 없다(不得貪勝)’는 바둑 격언처럼 인공지능에게 무조건 이기겠다는 기계적 사고를 버리고 보다 인간 고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인간의 고유 가치와 결합하여 새로운 창조를 일으킬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과거 인공지능은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인공지능은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허수(imaginary number)적 존재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수(real number)적 세계와 결합하여 복소수(complex number)를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복소수가 여러 가지 복잡한 계산을 단순화하여 과학 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인공지능은 인간이 해결 못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인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생전 처음 바둑을 두어 보는 아들은 몇 판을 내리 지고는 아마 5급 정도밖에 안되는 아빠가 마치 알파고처럼 보였나 보다. 자신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인공지능 바둑 앱을 들고 와서 아빠랑 대결을 시킨다. 인공지능 앱이 아마 1단 수준이라는 장황한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바둑을 두어보니 아마 1단은커녕 10급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의기양양하게 “아빠 실력 어때?” 하니, 아들이 엄지를 치켜세운다. 인공지능이 과연 내 기분을 알 수 있을까? “아들아, 너의 비교우위는 무엇이니?” 재대결을 요구하는 아들에게 바둑 한 점을 놓으며 살며시 물어보았다.



조병익 차장(예산회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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